그리고 이 불안을 증가시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우리 존재 전체에 가져오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에 즐겁고 피상적인 감정만을 요구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야만적인 가벼움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영혼들 안에서 세상 끝날까지 고통을 겪으실 것입니다.
나는 파스칼에 비하면 원자에 불과하며 나의 보잘것없는 글을 예수의 신비 옆에 놓는다면 비웃음을 받을 것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매일의 고난의 은총을 주시고 그것을 나의 구세주의 고난과 연합시키려는 의지도 내 속에 심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그분의 자비의 표를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받았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비열한 환희에 빠져 전쟁의 공포를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인구가 많고 시끄러운 도시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여기 저기 기도하고 있는 영혼들이 몇 명 있었지만 나는 그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미 병이 들었고, 유쾌한 무관심에 둘러싸여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나는 낙담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미래가 나에게 매우 암울해 보였기 때문입니다.